名前:리바이

거인 토벌수 : 8구

병장님이 좋아요

12월 31일, 오후 11시 40분을 조금 넘긴 시각.
병장님 방에서 함께 새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름 분위기를 내보겠다고 와인 한 병을 가져오긴 했지만 술이 약한 나는 자칫 마셨다간 그대로 곯아 떨어져 해가 뜬 뒤에서야 일어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나름 자중하고 있었으며 병장님 혼자서 와인을 한 잔 두 잔 비워내고 계셨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있던 일, 어제 있던 일.. 시답잖은 이야기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냥 병장님과 둘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웠다. 그렇게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중에 어느덧 시계는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하루였기에 별 감흥이 안 나던 새해 전 날이라는 분위기가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올해가 5분밖에 안 남았어요, 병장님. 5분이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구요. 아, 나이 먹기 싫어요.."

나는 병장님 팔을 붙들고 찡찡대기 시작했다.

"낙천적으로 생각해라, 지난 한 해 동안 살아남았다는 증거로 여겨. 조사병단에서 우리처럼 몇 해씩 살아있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지."

"그거야 그렇지만.. 솔직히 병장님도 나이 먹는게 유쾌하진 않으시잖아요? 내년이면 벌써,"

".....그 쯤 하지?"

병장님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 보셨다. 뭐 나도 계속 말해봤자 슬퍼지기만 할 뿐이라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말이죠, 병장님. 올해도 병장님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지난 한 해간 뭐 크고작은 부상은 있었지만.. 어쨌든 마지막은 이렇게 건강하게 보내고 있잖아요? 내년도, 내후년도,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더라도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었다. 나이를 먹는게 싫다니 어쩌니 하기는 했지만 역시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낼 수 있어 그리고 병장님 옆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병장님도 느끼고 계실 것이다.

"그래, 올해도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네가 말한대로 올해는 꽤나 우여곡절인 한 해였지. 나도 이렇게 한 해를 건강히 맞이한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야."

10, 9, 8, 7..
밖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몇몇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3, 2, 1!

"해피뉴이어, 병장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내 뒷목을 감싸는 병장님의 손길에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입술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와인향- 와인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입안이 와인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너무 키스가 길어진 나머지 나는 입을 떼고 병장님을 쳐다봤다. 서서히 내 시선을 따라 눈을 맞추는 병장님이,

"싫어?" 하고 짓궂게 말하신다.

"그건 아니지만요.."

"그럼 됐잖아."

다시금 병장님의 입술이 부딪힌다. 병장님을 꽉
껴안으면서 올 한 해도 이렇게 병장님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하고 마음 속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