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에서 청명은 그녀와 재회했다.
여인이 청명보다 먼저 천수를 다했기에 그를 기다리는 역할이었다.

둘이 마지막으로 현세에서 만났던 건 청명이 결사대와 함께 목을 치러간 직전이었다.
이 후로 여인은 청명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자연사했고,
청명은 십만대산의 정상에서 천마의 목을 치고 눈을 감았다.
당연히 서로의 죽음을 알 리 없었다.

넝마가 되어 제 앞에 나타난 청명을 여인이 눈물바람으로 맞이했다.
더없이 따뜻한 환대에 청명의 마음이 한 결 풀어졌다.
선계에서도 네가 있으면 되었다. 그럼 됐다.
이곳에는 먼저 온 청문과 사형제들이 있었다.
청명은 오자마자 화산의 안위를 걱정했다. 당연했다.
그가 그토록 애정하던 곳이었으니..
십만대산에서 청자배와 명자배들, 그리고 장로들까지 모조리 뼈를 묻었으니, 남아있는 어린아이들을 어찌할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여인은 숨죽여 울었다.
이어줬어야하는데, 가져온건 아닐지 선계로 온 화산 사람들은 괴로워했다.
그러나 한번 꺼져버린 육체를 다시 살릴 수는 없는 노릇.
이미 왔으니 돌아갈 수 없는 길.
그들은 그저 화산이 몰락해 가는걸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억겁같은 괴로움은 점차 옅어지고
그나마 화산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에 그들은 감사했다.
선계에서는 생에서 가졌던 몸의 모습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었다.
청명과 여인, 그 둘은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을 하고 선계를 거닐었다. 그런 시간이었다.
잠시간 꿈 같은 나날이었다.

백년이 지나 천마가 환생했다.
이 사실이 선계에 알려지자 또 한번 하늘이 발칵 뒤집혀졌다.
지금 당장이야 환생해도 육신만 가지고 있을 뿐 천마의 의식이 없지만,
곧 힘을 되찾아 깨어난다면 다시금 그때의 악몽이 재현되리라.
누군가는 이를 저지해야할 것이다.

청명은 알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백여년 남짓을 선계에서 살았던 그는
자신이 장문사형과 여타 사형제들과 결이 다르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는 천마의 목을 친 대가로 윤회의 고리를 벗어났고.
지금 현세에 환생해 그를 막을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청명은 어렴풋이나마 알고있었다.

다만 널 두고 가기가 가슴에 사무치게 남는구나.

그거 하나만이.
청명의 인연. 함께 한 세월이 유수와 같다.
청명은 일렀다.
다녀올테니 지켜봐달라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노라고.
여인이 이야기했다.
따라가겠다고.
대업을 이루는데 여기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인연이라 언젠가는 만나 이루어지겠노라
그렇게 알고있겠다고 했다.

선계에서의 기억은 모두 잊고 현세를 마귀에게서 구해내고나면
영영 이곳에서 만년해로 하자.
청명과 여인은 현세로 뛰어들었다.

훗날
'초삼' 이라는 한 소년의 몸에서 깨어난 청명은
짊어진 사명에 걸맞게 난세에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된다.
그의 이름은 중원 전역에 널리 알려지고 그를 향한 찬사가 하늘까지 닿았다.
청명이었다.
여인은 과연 어찌되었을까?

둘은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