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회사의 회식날. 사실 나는 술에 약한 데다가 친한 회사 동료도 한지밖에 없어서 안 오려고 했지만 엘빈 팀장님, 리바이 과장님 모두 회식에 참석하신다길래 울며 겨자먹기로 나오게 되었다. 가뜩이나 일을 못해서 매일 혼나는데, 회식까지 빠질 수는 없으니까.
회식 장소는 고깃집. 회사와 가까이 위치한 데다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회식 때마다 이 곳으로 온다는 한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거의 모든 직원들이 식당 주인 분이랑 꽤나 친한 듯 보였다.
'어디 앉지.'
다른 직원 분들이 식당 주인 분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매의 눈으로 자리를 스캔했다. 술 못 마시는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자리 선점. 일단 상사의 주변은 피해야 한다. 괜히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술만 받아 마시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 여기로 와!"
한지가 활짝 웃으며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재빨리 한지 옆으로 가서 앉는데...왜 과장님이 여기에?
그렇게 해서 술게임이 시작되었다. 내 왼 쪽은 한지, 오른 쪽은 리바이 과장님. 왠지 과장님, 술 되게 잘 마실 것 같은데. 나한테 술 계속 따라주시는 거 아냐...망했다.
"베스킨~라빈스~써리~원! 일이삼!"
"이십팔, 이십구...!"
그리고 내 옆에는 과장님. 꼼짝 없이 술을 마시게 생겼다. 탁자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폭탄주가 어서 자신을 마시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미치겠다...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겠지?'
"아.. 한 잔만 마셔도 알딸딸해지는데..."
술을 앞에 두고 혼잣말같지 않은 푸념을 조용히 늘어놓았다.
"쯧. 대학생도 아니고."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잠시 가만히 앉아계시던 과장님은 탁자에 놓인 폭탄주를 가져가 입에 대셨다.
"오오오~ 지금 흑기사인가요?! 쭉쭉쭉쭉쭉~"
과장님은 순식간에 술을 비워 내셨고, 전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셨다. 설마 과장님이 날 도와주신건가?
"다들 2차 갈거죠?"
고기를 다 먹고, 2차로 노래방에 가자고 떠들고 있는 다른 분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빨리 집에 가라. 술 잘 못한다며."
"들으셨어요? 하지만 저 혼자만 가면 좀 그래서..."
"아니, 됐어. 술 마시다가 곯아 떨어지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음..하긴 그렇겠네요."
과장님은 휴대전화를 들어 콜택시를 부르셨다.
"택시는 제가 불러도 되는데...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과장님은 먼저 가세요."
"나도 집에 갈거다. 피곤해서."
과장님은 택시가 올 때까지 내 옆에서 같이 기다려 주셨다. 어두운 밤길에 혼자 있으려니 무서웠는데 과장님이 같이 기다려 주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어색한 공기가 흘러 계속 뻘쭘하게 택시만 기다렸으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아, 택시 왔어요!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택시 문을 열었다.
"잠시만."
"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자."
얼떨결에 과장님에게서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과장님 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고.
"아, 네! 감사합니다. 저 그럼 가볼게요."
택시에 몸을 실으며 나는 휴대전화에 '리바이 과장님'을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