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前:리바이

거인 토벌수 : 8구

병장님이 좋아요

어찌어찌 호텔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그리고 거래처까지 다녀 오니 벌써 밤이었다. 방에 들어온 나와 과장님은 그냥 묵묵히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그 미치도록 고요한 정적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과장님, 배 안 고프세요?"
어떻게든 정적을 깨뜨리려 꺼낸 내 말에, 과장님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날 쳐다보셨다.

"저녁을 그렇게 먹고도 배고픈 거냐, 너는."

"그치만 그런 화려한 곳에서 먹을 줄은 몰랐다구요.. 저는 간단히 소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 사장이 그렇게 와인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맞춰줄 수 밖에."

"...어쨌든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런 분위기는 적응이 안 돼서요."

"뭐 룸서비스라도 시키지."

"아아뇨. 1층에 편의점 있던데 제가 사러 갔다 오겠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신 거라도..?"

"술."

"진짜 애주가시네요.. 뭐어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기다려, 같이 나가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우리 층까지 오는 것을 기다릴때도 이 고요함은 여전했다. 나는 과장님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고 싶었지만 과장님은 별로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간 나와 과장님. 과장님은 음료 코너에서 술을 찾으셨고 나는 스낵 코너 앞에서 간단히 배를 채울 것을 찾았다. 하지만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숫자 뿐.

'온통 일본어 뿐이라 뭘 사야할지..'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게 무슨 음식인지 어떤 맛이 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일본어 능력자인 과장님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또 다시 붙어 있으면 그 어색한 침묵이 이어질까봐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눈으로 봐도 무슨 음식인지 파악이 되는 것들로만 골라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과장님, 다 고르셨어요?"

"계산 할테니 이리 줘라.."

"계산은 무슨..괜찮아요! 술 한 캔 정도는 제가 살게요."

"신입한테 얻어 먹는 취미는 없으니까."

결국 과장님이 계산을 하셨고, 우리는 봉투를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외에 과장님과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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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고, TV을 켜자 그제야 이 답답한 침묵 속에서 해방된듯한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는 광고가 반갑게 느껴졌다.

"한 잔 할래?"

"저 술 많이 못해요...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과장님이 맥주캔을 따고 컵에 맥주를 따르실 동안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 봉지를 뜯었다. 대충 술과 안주가 준비되자, 나는 과장님과 가볍게 건배를 했다.

내가 주량이 약하긴 하지만 컵에 2/3 정도밖에 차 있지 않은 맥주로도 취한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컵의 바닥이 보일때쯤 내 얼굴은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과장님, 혹시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왜 저같은 신입을 오키나와까지 데리고 오셨어요? 저 일본어도 전혀 못하는데.."

"..너 취한 거냐."

"과장님! 혹시 저 싫어하세요?"

"뭐?"

술 때문인지 내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말들이 술술 밖으로 빠져 나왔다.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야속하게도 내 입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솔찌키! 그러자나요. 과장님이 저한테 자래주신 것도 있긴 한데요, 저 맨~날 갈구셔짜나요~ 다른 사원 분들도 있는데 바쁜 저한테 서류 다 넘기시구.. 야근도 저만 시키구..."

점점 발음이 꼬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나조차도 알 수 없게 됐을 무렵,

"...다."

"에? 안 들려여!"

"....때문이다."

그리고 시야가 깜깜해졌다.